오늘의 서양철학 - 안토니오 네그리 , 솔 크립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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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오늘의 서양철학 - 안토니오 네그리 , 솔 크립키

by 우벨라 2023.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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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네그리

안토니오 네그리
1933~

 

철학자의 삶

안토니오 네그리는 1933년 이탈리아 북부 지역 파도바에서 태어났다. 

그는 파도바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교수직도 얻었다. 그는 노동자의 자율을 창립한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는 자기의 스피노자에 대한 독해와 그의 제자 마이클 하트와 함께 저작한 '제국'으로 유명하다.

그는 청년 시절인 1950년에 로마 가톨릭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가톨릭 행동파에 가입한다. 하지만 사회주의적 경향과 보수적인 탄압으로 그는 가톨릭 행동파에서 나오게 된다. 이후 그는 1954년에 이탈리아 통일사회당에 들어가게 되었고 독일과 프랑스를 넘나들며 수학하였다. 그는 철학 교수 자격도 취득한다. 그의 사회주의 운동이 시작된 건 1963년부터이다. 그는 사회당을 탈당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사회당이 기독교 민주당과 연립정부를 이뤘기 때문이었다. 그 후 그는 자본론 세미나를 조직하게 된다. 이후에 그는 '노동자의 힘'이라는 집단에 들어간다.

1979년 그가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이탈리아 기독민주당의 수장인 알도 모로 총리를 납치하고 살인하려고 했다는 조작된 죄목 때문이었다. 그는 결백을 밝혀냈지만, 운동 중에 활동과 저술을 통해 혁명적인 단체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형을 선고받게 된다. 그는 총선에 출마하여 의원 면책 특권을 이용하였고 결국 당선되어 석방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면책 특권 중지 소송이 시작되어 그는 프랑스로 도피하여 망명 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파리 8대학과 국제철학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쳤다. 이 시기에 그는 많은 학자와 공동으로 작업하고 교류했다. 1997년 그는 수배되었다. 이유는 아우토노미아 운동에 참여하였기 때문이었고 그의 동지들을 돕기 위하여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돌아온 그는 정부에 의해 6여년간 가택 연금되었으며 2003년 4월에 자유의 몸이 된다. 그는 노인이 된 오늘날에도 유럽 등지에서 저술 활동과 세미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철학자의 사상

그는 반자본주의, 민주주의, 마르크스주의, 민주주의 세계화 등에 대한 주제를 연구했다. 그의 저서 '제국'은 노동과 자본의 재배치와 주권 형태의 변화를 다룬다. 이 변화의 원동력은 프롤레타리아의 활력에서 찾는다. '제국'은 2004년에 출간된 '다중'과 논쟁이 되었다. 다중의 개념과 노동의 재구성 및 재배치 등이다. 여기서 노동의 재배치는 비물질적인 노동의 확대와 산업 노동의 축소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하여 논쟁이 되고 있다. 그는 모든 노동은 협동과 소통이 내재한 것을 주장한다. 그의 참신하고 풍부한 도그마를 파괴하는 연구는 좌파적 지적 운동에서 중요하고 새로운 원천이다. 그는 평생을 코뮤니즘을 혁신하고 개조하기 위해 투쟁해왔으며, 스피노자, 마키아벨리를 아우르는 당대 최고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영향력은 이탈리아 자율 주의 운동에서 두드러진다. 그의 영향은 영국에도 확산하였고 그의 자율 주의 사상은 미국에도 전파되었다.

 

 

솔 크립키
1940~2022

 

철학자의 삶

솔 크립키는 1940년 미국 뉴욕에서 유대인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랍비였다.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 언어 등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던 그는 6세에 고대 히브리어를 읽었으며, 9세에는 셰익스피어 전집을 독파하였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르네 데카르트의 수학적 저술을 읽었다. 18세에는 양상 논리의 완전성을 증명하고 이를 출판한다. 그는 하버드대학에 입학하여 수학을 전공하였고 천재성을 발휘하며 전교에서 수석으로 졸업을 하게 된다. 그는 하버드에서 대학 생활 중 학부 2학년 동안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논리학을 강의하였다. 이후에 그는 모교인 하버드 대학교에서 강의하였고, 나중에는 록펠러 대학교에서 강의하였다. 이렇게 그는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프린스턴대학에서 정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는 2002년에 뉴욕 시립대학교에서 강의하였고 그의 업적을 보존하고 연구하기 위한 솔 크립키 센터가 창립되었다.

 

철학자의 사상

그는 크립키 의미론을 정의하였다. 이것은 직관 논리와 양상 논리의 의미론을 정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철학의 새로운 이론을 '이름과 필연'에서 제시하였다. 여기서 그는 본질주의 형이상학을 도입하였다. 이는 분석철학이 그동안 무시해왔던 것으로써 그는 새로운 논의의 장을 연 것이다. 그가 이 책을 펴낸 것은 프린스턴대학에서 강의로부터인데 원고도 없이 한 것이라고 한다. 

크립키 전에 있던 양상 논리학자들은 언어분석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학적 장치를 생각해내지 못하였지만, 그는 참인 진술의 필연성과 가능성을 수학적으로 증명해냈다. 그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를 독창적으로 해석하였다. 그의 해석은 철학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관점이었고 비트겐슈타인과 구별을 하기 위하여 '크립켄슈타인' 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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