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Socrates
철학자의 삶
기원전 470년 혹은 469년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목수였고 어머니는 산파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이름, 직업 다 확실한 건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그 당시 시민의 의무로 3차례 참전을 하였고 그 뒤로 고향을 떠난 적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크산티페라는 여자와 결혼 후 세 명의 자식을 낳았다. 하지만 이 역시 확실치는 않다.
그의 삶은 지극히 평범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그의 독특했던 삶의 방식과 철학적 대화였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해서 아는 것이었다.
이 주제에 관해 관심을 보이는 이가 있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대화하였다.
훗날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이라고 부른 이 대화 방식은 많은 추종자를 만들어 냄과 동시에 적들을 만들어 냈다. 결국 그는 본인의 철학적 실천을 위험으로 간주했던 사람들에게 불경죄로 고발당했다.
그 결과 재판에서 유죄 판결받게 되어 사형에 처해진다.
그가 인생 속에서 보여 준 철학적 대화와 실천들은 2천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지식인들과 철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철학자의 사상
그는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앎을 행복에 이르는 첩경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지만, 무엇이 행복한 삶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보통 재산이나, 명예, 지위 등을 좋은 것으로 보며 행복의 필수적 조건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에게 이것들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들이었다.
살아가면서 좋은 것을 추구하고 나쁜 것을 멀리하며 인간들은 참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는 지식을 '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대화를 통해 덕의 본성과 가능성을 모색하였고, 덕의 항목에 속한 용기, 경건, 정의 등에 대해서도 각각의 상호 간 관계와 본성을 탐구하였다.
그는 오로지 대화를 통해 철학을 했다. 그 외에 어떤 글도 남기지 않았다. 따라서 그를 이해하려면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남긴 증언에 의존해야만 한다. 플라톤의 초기의 대화편을 보면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구체적이고 많은 자료들을 볼 수 있다.
기원전 399년, 그의 재판이 열렸다. 그 당시 그의 나이는 70세였다. 그는 유죄 판결을 받게 되었고 사형에 처해졌다.
이 재판의 이유에서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이해하는 것에서 중요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기소 항목을 보면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그는 그 당시 신을 믿지 않았으며 새로운 영적인 걸 도입했다. 이러한 행동이 젊은 사람들을 타락시켜 부정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기소 항목들에 대해 하나하나 답을 하면서, 이 고발들은 전부터 자신을 둘러싼 부정적인 소문들의 결과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비난과 오해를 없애기 위해 그가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며 변론하게 된다. 그는 삶에서 반성을 안 하는 것을 가치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신이 그에게 내린 사명에 관해 설명한다. 그가 해온 일은 끊임없이 캐묻고 탐구하고 검토하는 삶이었다. 이것들 통해서, 자기기만과 허위 의식에 빠진 사람들에게 무지에 대한 자각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변론은 고발과 비난에 맞서 그를 방어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두 번째로는, 그의 대화 속에서 다뤘던 질문들, 즉 덕에 관한 대화편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인간에 있어서 덕이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탁월함일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탁월함을 적의 세부 항목으로 정의, 용기, 경건, 지혜 등을 들었다. 이러한 것들을 갖춤으로써 인간들은 도시의 지도자가 될 수 있으며 행복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계 입문을 희망하던 젊은이들은 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출세의 수단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전통적인 덕을 배우는 데만 몰두하여 덕의 본성을 배우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어떻게 덕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소크라테스에 의해서만 제기된 것이었다.
플라톤의 대화편 중 라케스를 보면 덕 가운데 용기의 본성을 탐구한다. 여기서 그는 두 명의 장군과 대화를 나누는데 전쟁터에서는 용기라는 덕목을 가장 필요로 한다면, 장군은 용기의 덕을 가장 잘 체화한 전문가들일 것이다. 그는 장군들과 대화하며 그들이 용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두 장군은 용기에 대한 정의와 행위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취했다. 소크라테스는 무언가를 진정으로 안다면 그것에 대해 생각이 결코 달라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두 장군은 용기의 덕을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는, 그를 학교의 원장으로 등장시킨 작품을 보면, 그는 하늘의 별을 관찰하기도 하며 올림포스 신이 아닌 자연의 요소들을 주제로 대기 현상을 설명했다. 또 빚에 쫓기던 채무자들에게는 대화로써 채권자를 이길 수 있는 논쟁의 기술을 가르친다. 이 작품에서 그는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자인 동시에, 법정에서는 논쟁의 기술을 가르치는 수사가로 묘사된다. 이런 모습은 철학자가 아닌 일반인들의 눈에 비친 소크라테스가 자연학자나 소피스트들과 큰 차이가 없었음을 암시하며 이런 모습으로 그에 대한 오래된 악소문과 오해의 원천과 이어진다.
플라톤
Platon
철학자의 삶
그의 집안은 아테네 명문가였다. 그의 꿈은 정치가와 비극작가였으며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된 건 그의 나이 스무살 무렵으로 추측된다. 플라톤은 정치를 함으로써 현실을 개혁하는데 큰 야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야망은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하면서 사라지게 된다. 이후에 그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철학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고 아카데미아를 창설하게 된다.
그는 여기서 제자를 양성하고 저술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철학자의 사상
그의 철학적 출발점은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스승이 아테네와 갈등했던 것들을 통해 당대의 현실을 이해하였고, 스승이 나눴던 대화 내용을 통해 철학과 윤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그는 스승의 사상을 이어받고 자신의 책의 대부분을 스승을 중심으로 한 대화의 형태로 저술했다. 그는 스승의 생각을 바탕으로 지혜, 경건, 용기, 정의 등 인간적 탁월성의 영역을 탐구하게 된다. 여기서 지혜를 중심으로 삼고 탁월성을 통일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중기로 분류되고 있는 대화편들에서는 형상 이론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그의 초기의 생각에 형이상학적 기초를 놓는 이론이다. 용기 있는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용기의 형상이 바로 용기 있는 행동을 용기 있게 하는 용기 자체를 뜻한다. 즉, 용기의 형상을 아는 지혜가 바로 탁월성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형상 이론을 형상 간의 결합 문제로 심화시켰고, 자연에 대해서 형이상학적인 탐구와 삶의 문제를 통일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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