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베르그손
1859~1941
철학자의 삶
앙리 베르그손은 1859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학업에 뛰어났으며, 전국 경시대회에서 다양한 분야의 상을 탔다. 18세에 고등 사범학교에 입학 후 22세에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그 후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07년에 '창조적 진화'를 출판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 192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후에 프랑스를 대표하여 외교 사절로 전쟁 방지를 위하여 활동하게 된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점령당한 파리에서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철학자의 사상
그의 철학은 지속, 생명, 의식의 문제에 연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지속은 생성에 대한 그의 베르그손적 명칭이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여기서 유물론적 과학주의 입장에서 기계론적 우주론으로 발전시킨 스펜서의 철학에 반대하였고, 생성과 창조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생명형 이상학을 수립하였다. 그는 선험적이고 논리적인 체계를 구축하기보다는 직관과 경험에 기반을 두며 동시대 자연과학의 실증적인 성과들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형이상학과는 다르다. 그의 첫 저서인 '서론'은 심리 물리학을 비판한다. 그 이유는 의식의 질적 특성을 양적으로 설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독특한 개념인 지속을 여기서 최초로 보여준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의식 상태의 변화를 관찰하며, 그것들의 본성이 양화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독특한 존재 방식을 가진다고 하였다. 그는 순수한 지속과 공간의 관념이 몰래 개입한 지속을 서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철학은 진화론과 심리학, 생리학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열역학이나 상대성 이론의 분야도 자주 언급한다. 이러한 점은 과학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그에게 철학과 과학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중요했다. 그는 형이상학은 직관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분석은 과학의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서양 철학 전통의 실수는 직관과 분석의 두 가지 방법을 혼동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그는 참된 형이상학이란 과학과 상보적 쌍을 이루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저서 '창조적 진화'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책은 프랑스 철학 내부의 과학 철학 전통을 반영하며, 우주적 규모의 자연 철학을 담고 있다. 그는 진화와 창조라는 어려운 개념을 재조명하며 전통적 사고방식을 전도시킨다. 그는 진화란 기존 요소들의 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새로움의 출현으로 생성과 창조의 증거라고 했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1889~1951
철학자의 삶
그는 188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8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제철업으로 많은 돈을 버는 손꼽히는 부자였다. 그의 집안은 예술가를 사랑하는 분위기라 그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그는 처음에는 항공 공학을 전공하였지만, 러셀의 '수학 원리'를 읽고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가서 러셀에게 철학과 논리학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는 이 대학교가 본인이 일하기에는 이상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대학 연구자들은 그들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 것이 싫었고, 심오한 생각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에 그는 노르웨이 오지에서 독거에 들어갔다. 이 시기가 그의 열정이 가장 불타오르는 시기였다고 한다. 이때 그의 '논리 철학 논고'가 완성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오스트리아 군에 자원하여 참전하게 된다. 그는 전쟁을 통해 자기 눈으로 본 경멸과 천박함을 기록하였다. 전쟁 중 그는 이탈리 군의 포로가 되어 수감된다. 수감 중에도 그는 여러 원고를 썼다. 끔찍한 전쟁을 경험한 그는 이후에 철학을 떠나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다. 교직 생활 중 그는 체벌 문제로 고발당하여 그만두게 된다. 그 후 그는 수도회에서 정원사로 일한다.
이후 그는 '논리 철학 논고'에서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음을 인정하고 다시 철학에 복귀하게 된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철학 교수직의 후임자가 되었으며 영국 시민권도 획득하였다.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고, 그는 전쟁 중 강의나 하고 있는 자신을 스스로 견디지 못하여 런던에 있는 병원에서 봉사를 하게 된다. 1947년 그는 집필에만 전념하게 된다. 그는 암에 걸려 1951년 사망하게 된다.
철학자의 사상
그의 대표적인 저서 '논리-철학 논고'의 궁극적인 과제는 삶의 의미와 세계의 의미와 같은 실존적 문제이다. 그는 그림 이론을 제시하며 사고의 한계와 언어의 한계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는 이 저서의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언어와 논리의 문제를 계속 연구했다. 그는 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와 이 저서에서 주장했던 언어의 논리학은 한 개로 고착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철학적 탐구'를 집필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철학을 상당히 많이 수정한다. 그림 이론보다는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를 중요하게 여기며, 기존에 있던 사물과 언어가 일치한다는 주장을 반대했다. 여기에서는 인간의 감정과 고통 등과 같은 심리적인 용어들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문제 삼았다. 사적 언어, 사적 감각, 유아론과 얽힌 이런 문제가 '철학적 탐구'를 관통하는 물음이다. 또한 그는 실천과 체험의 기초는 기술의 숙달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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