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서양철학 - 미셸 푸코 , 위르겐 하버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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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오늘의 서양철학 - 미셸 푸코 , 위르겐 하버마스

by 우벨라 2023.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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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1926~1984

 

철학자의 삶

미셸 푸코는 1926년 프랑스에서 부르주아지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해부학 교수이자 유명한 외과의였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주고 싶었으나 푸코는 역사에 빠져있었다. 그는 역사, 라틴어, 프랑스어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냈으나, 수학에는 재능이 없었다. 중학생 때 그는 유급하게 되었고 전학을 가게 된다. 전학 간 학교에서 그는 실력을 발휘하며 철학에서는 2등을 했다. 1946년 그는 명문 고등 사범 학교에 입학한다. 당대 수많은 고등사범학교의 학생들처럼 그도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을 신청했으나 그는 조합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입은 거절된다. 이후에는 공산당에 가입했으나 스탈린의 독재기에 관한 실상을 보며 환멸을 느끼고 당의 태도에 실망하며 탈퇴하게 된다.

그의 철학 교사는 그가 철학에 대하여 항상 호기심을 보일 학생 부류로 보았다. 푸코는 고교 시절 학교의 종교적인 분위기를 싫어했고, 수업 또한 경멸했다. 그는 심리학과 철학 학사를 취득하였고 1951년~1955년 동안에는 고등사범학교에서 심리학을 가르친다. 1955년 이후 그는 스웨덴, 폴란드 등에서 프랑스 문화원장 등으로 재직하다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1961년 소르본 대학에서 주 논문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를 제출한다. 그 후 '임상 의학의 탄생' , '레몽 루셀' 등을 출간한다. 그는 1970년 최연소 교수로 임명되어 강연한다. 그는 사회과학, 인문학 등 많은 영역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감옥, 의학, 정신의학의 체계에 대해 비판하였고,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다룬 연작 '성의 역사'를 출간한다. 그는 1984년 파리에서 에이즈로 사망한다. 

 

철학자의 사상

그는 우리가 필연적이고 보편적이고 본질적이라고 믿는 것이 사실은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바꿀 수 있는 것이며 변화할 수 있는 것임을 밝히고자 했다. 그의 대표작 '광기의 역사'를 보면 문화나 역사와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는 '광기'의 관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밝힌다. 그는 정체성의 모든 측면을 권력관계의 산물로 인식했다. 권력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힘이며, 집단이나 개인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권력은 개개인이나 집단들에게 소유될 수 없고, 독점될 수 없으며, 단지 우리 생각을 구조화하는 사회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그의 권력에 대한 이론은 지배와 연관되지 않는다. 

그는 계보학이라는 단어에 관하여 본인의 개념을 규정했다. 그는 투쟁에 대한 역사적인 지식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게 만드는 기억의 결합을 계보학이라는 용어로 부르자고 주장하며, 사물은 어떠한 본질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이전의 역사적 절차가 무시했던 방법들을 이용하며, 묻힌 단어를 복원해야 한다고 하였고 육체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위르겐 하버마스

 

위르겐 하버마스
1929~

 

철학자의 삶

위르겐 하버마스는 1929년 독일에서 태어난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사회 철학자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구순구개열 장애를 갖게 되었다. 이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했으나, 그는 개의치 않고 학업에 열중했다. 그는 괴팅겐 대학교에서 철학, 경제학, 심리학을 공부했다. 이후에는 강사와 교수 생활을 하며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가 비판 이론에 입문한 것은 1956년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에 조교로 들어가면서부터이다. 그가 비판 이론의 공식적인 후계자로 인정받은 것은 철학과 사회학 교수로 취임하면서부터이다. 그는 비판 이론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의 대표자이다.

1960년대 말, 학생들의 폭력적인 시위와 학생운동의 비민주성을 '좌파 파시즘'으로 비판하다가 공격의 표적이 되었다. 결국 그는 교수직을 던져 버리고 연구소에 들어가 10여년간 저술과 연구에만 집중한다. 그곳에서 그를 대표하는 '의사소통 행위' 이론을 오랜 시간을 탐구하여 출간했다. 그는 1982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으로 복귀한 뒤 정년퇴직하여 명예 교수가 되었다. 퇴임 이후에도 그는 정치적 현안과 종교 문제 등 활발한 연구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철학자의 사상

그의 사상은 오늘날까지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영역에서 전개되어 왔다. 그의 철학은 많은 거장과 논쟁함으로써 형성되었다. 

그는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이 가능한 것이 진정한 해방된 사회라 했다. 빈곤과 가난만이 사라진 건 진정한 해방으로 보지 않는다. 이성을 통해 가르치고 논쟁하고 계몽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해방된 사회라 본다. 합리적인 대화를 통하여 해방과 화해의 가능성을 지속해서 연구해 왔으며, 이러한 직관에 따라 자신의 사회 이론은 물론 민주주의 이론 또한 발전시켜 왔다.

그의 작품은 계몽주의 전통을 바탕으로 이성에 대한 인간의 잠재력 실현을 통하여 세계를 변화시킴으로써 민주사회주의의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인간적이고 평등한 사회에 도달할 수 있는 잠재력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진리와 정당화'는 그가 오랫동안 방치했다고 표현하는 이론 철학의 문제들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 언어적 인식의 한계와 실재의 객관성을 매개하는 것과 우리에게 불가피하게 다가오는 규범성과 인간 삶의 자연사적 우연성을 매개하는 것이다. 그의 이론적 체계는 이성적인 관심사를 쫓으며, 그것에 관하여 토론할 수 있는 인간의 이성적, 비평적 의사소통의 잠재력 그리고 정치적 해방에 대해 밝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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